양일종원장 칼럼 - <뇌전증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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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11-27 14:31 조회7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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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개의 뇌신경 세포 중 일부가 짧은 시간 동안 발작적으로 과도한 전류를 발생시켜서 나타나는 이상을 간질 발작(seizure) 혹은 뇌전증 발작(epileptic seizure)이라고 하고, 이러한 발작이 두 번 이상 자발적으로 반복해서 생기는 것을 뇌전증(epilepsy)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전해질 불균형, 산-염기 이상, 요독증, 알코올 금단현상, 심한 수면 박탈 상태 등 특이한 원인 인자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닌 몸의 이상이 없음에도 뇌전증 발작이 반복적으로(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 발생하여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질환군을 뇌전증으로 분류합니다. 또는 뇌전증 발작이 1회만 발생하였더라도 뇌 영상 검사(뇌 MRI 등)에서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병리적 변화가 존재하면 뇌전증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간질 자체가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에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습니다. 비록 용어는 변경되었으나 뇌전증과 관련해서는 명명법 이외에는 바뀐 것이 없으며 진단과 치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역사를 통해 유명한 업적을 이루었던 위인이나 영웅 중에서도 뇌전증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문학 분야에서 영국의 시인 바이런,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가 있으며 정치가나 지도자로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군주 시저, 제정 러시아의 피터 대제가 있고, 철학자로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가 있습니다. 미술가로는 고흐, 음악가로는 차이코프스키, 발명가로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노벨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쌓은 업적을 볼 때 뇌전증은 결코 불치병이나 정신병이 아니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흔한 병이고 뇌전증에 걸린 사람도 얼마든지 지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뇌전증은 형벌이며 치료될 수 없다는 잘못된 통념으로 상당수의 뇌전증 환자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뇌전증 치료는 약물치료가 시작입니다. 첫 번째 뇌전증 발작으로 인하여 내원한 환자는 대부분 즉시 항뇌전증약을 투여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번 이상의 뇌전증 발작이 특별한 유발 요인 없이 생긴 경우 약물치료를 시작합니다.
대부분 항경련제를 사용하는데, 고전적 항경련제를 쓰기도 하고 1990년대 이후 개발 상용화된 약물로 기존의 항경련제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것이 많고, 심각한 부작용이 적으며 약물 상호작용 측면에서도 우수한 점이 있어 리리카, 뉴론틴, 토파맥스, 라믹탈 등이 점차 단일요법제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약물치료의 목표는 지속적으로 약을 사용하더라도 특별한 부작용 없이 증상을 조절하는 데 있고, 약물 선정은 효과와 안전성을 모두 고려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뇌전증의 원인인 병리적 변화를 뇌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는 국소 절제술을 통하여 해당 부위를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법인데, 약물로 치료할 수 없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뇌전증 수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비해 월등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장비와 비용에 관한 규정이 세계적인 추세를 못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뇌 내시경 SEEG 수술(두개골에 1㎜ 작은 구멍을 뚫고 0.8㎜ 가는 전극을 삽입해 뇌전증 병소를 찾는 수술)로 뇌전증 병소를 찾은 후 뇌 내시경 레이저 장비(한국에 없음)로 뇌전증 병소를 제거합니다. 수술이 실패할 경우에는 SEEG 수술과 레이저 시술을 다시 합니다. 이와 같은 치료를 2∼3회 반복하면서 난공불락의 난치성 뇌전증을 완치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다 비급여입니다. 내시경 레이저 수술 장비와 RNS 신경자극기는 한국에 없습니다. 모두 미국 회사들인데 미국·캐나다와 유럽에는 판매하지만 한국에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식약청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뇌전증 수술을 담당하는 신경과, 소아신경과, 신경외과 전문의들의 수는 매우 적습니다. 게다가 정년으로 1세대 최고 뇌전증 수술 전문가들이 줄줄이 퇴진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진료 공백이 예상되고 뇌전증 수술도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와 마찬가지로 뇌전증 수술 전문 의사들도 정부가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필수 의료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양주예쓰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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