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종원장 칼럼 - <김사부와 차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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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1-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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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웬만하면 의학 드라마를 보지 않습니다. 실제 의료현장과 비슷한 또는 현재 사회적 문제까지 동원하여 상황을 설정한 후 근거 중심의 의학이 아닌 너무 이상적인 치료 방향 설정과 해피엔딩 일변도여서 판타지 소설을 보는 느낌이었고, 또한 바쁘기도 하고 집중만 해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는 병원에서의 러브라인이 못마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나 요즘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대만의 의학 드라마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현실감이 있고, 수술 및 검사 등 치료 방향 설정이 수긍되면서 의료진의 열정, 생명에 대한 경외심, 의료사고와 그에 대한 대처 및 사회적 분위기 등 볼거리가 더 많고 생각할 것이 더 많아서 차라리 외국의 의학 드라마를 주로 보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3을 보면서 그동안 느껴왔던 불편함이 또 한번 생기며 의아함을 넘어 제작사와 작가의 의도를 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심폐소생술(CPR)만 하면 환자가 거의 살아나면서 자발순환회복(ROSC)을 외치는 의료진, 수술의 위험성과 합병증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 장면은 거의 없고 환자를 살리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구호 아래 테이블 데스(수술장에서 마취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 가능성이 높으면 수술 주치의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제 마취과 동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데, 드라마틱하게 살려낼 뿐 아니라 폐 이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는 행정적인 기적까지 보여주니까 시청자들로 하여금 환상을 가지게끔 해서 실제 병원에 오시면 진료하는 의사는 김사부 발바닥 수준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응급심폐소생술을 거의 하지 않는 정형외과 전공인 필자도 가끔 응급실에서 손을 바꾸어 흉부 압박을 시행합니다. 제 경험으로 자발순환회복이 되는 경우는 10% 미만이었고, 의식이 돌아와서도 흉부 압박으로 인한 갈비뼈 골절이 의료사고로 연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기억도 있습니다. ‘슈퍼 의사’들만 나오는 TV를 보다가 실제 의료현장에서 동의서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다반사이고, 환자 상태가 나빠지거나 결과가 잘못되면 이해의 수준을 넘어 무조건 의사의 무능력, 의사의 책임, 의료사고 주장을 하게 되는 드라마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의료진들은 점점 확실한 질환만 수술하려고 하고, 힘들고 어렵고 회복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의료사고로 몰릴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마취는 물론 수술 집도까지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어 3차 병원에 환자 집중 현상이 심화하게 됩니다. 문제 발생이 많은 소화기 내과나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는 지원이 줄고, 하루라도 빨리 이 바닥에서 벗어나 피부, 미용으로 마음 편하게 진료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필자는 개원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개원 초기에는 90세를 넘어 106세 할머니도 인공 고관절 수술을 해서 걸어서 퇴원하였고, 그 내용으로 지방신문에 기사가 났었는데, 20년의 의료 발전이 있었지만, 문제가 생기면 의료진을 구속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마취과에서 80세 이상 고령 환자의 마취를 고사하면서 인공 고관절 수술은 못하고 국소 마취로 간단한 골유합 수술만 하게 되어 환자의 빠른 회복 기회가 소실되는, 의학 드라마와는 딴판의 현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불륜을 저질러 같은 병원에서 아내와 불륜녀가 같이 일하는 설정인데, 사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퇴근하는 순간까지 수술과 진료가 계속되는 시간에는 전혀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오진과 실수가 발생하므로 다른 곳에 주의를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같은 병원에서 불륜이라니.
설정에 무리가 있지만 드라마는 재미를 위주로 픽션에 불과하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고, 작가는 의학 드라마가 다른 분야보다 재미와 정의, 해피엔딩을 강조하게 되면 현실에서는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여 좀 더 현실에 가까운 또 미화되는 부분이 아닌 실제 고민이 되는 의료현실 문제(삭감과 저수가, 의료소송 등)를 더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양주예쓰병원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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